그런 이름 있다

건넌방 2011. 6. 4. 14:38
그냥 소곤소곤 부르기만 해도 눈물 나는 이름이 있다
입 꾹 다물고 마음으로 부르기만 해도 코끝 찡해지는 이름이 있다
연필 쥔 손으로 무심코 적는 이름이 있다
컴퓨터 자판으로 습관처럼 찍는 이름이 있다
바람이 불면 바람 속에 날아오는 이름이 있다
비 오면 비와 함께 내려 발꿈치 적시는 이름이 있다
개구리가 개굴 울어도 뻐꾸기가 뻐꾹 울어도
죄다 그 이름 부르는 걸로 들리는 이름이 있다
들어도 들어도 싫증나지 않는 이름
불러도 불러도 더 부르고 싶은 이름

당신에게도 그런 이름 있는가
Posted by 구름할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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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었을까, 무엇으로 나는 지금까지 허이허이 달려왔던 것일까…

국민학교 3학년 때, 사촌언니가 갖고 있던 화집에서 고호의 그림을 처음 보았을 때 숨이 턱 막혀서, 막혀서…목구멍에 불이 붙는 줄 알았다.
같은 해였던가 아니면 다음 해였던가, 역시 그 언니의 다른 화집에서 샤갈의 전쟁을 보았을 때도 웬 무시무시한 영상이 내 머리에 한 방 먹인 듯했다.
그리고 그즈음에 들었던 베토벤의 곡들은, 나로 하여금 전생에 베토벤이었을 거라는, 지독한 집착에 빠지게 했었지. 얼른 자라서 독일로 날아가고 싶었었다. 베토벤의 음악을 베토벤의 고향에서 듣고 싶었다.
5학년 때 헤세의 데미안을 읽고 또 그렇게 나는 몇 날 며칠을 잠을 이루지 못 했다. 넘기고 또 넘기고…참으로 질기게도 그 책을 읽었었다. 나도 내 속에서 꼼지락거리는 무언가를 그렇게 글로 옮겨놓을 수 있을까, 처연하게 집착했었다.
그 해에 나는 마론 브란도가 나오는 영화를 줄줄이 봤다. 세상에나! 그런 눈빛을 한 사람이 있을 수 있다니…! 한 번이라도 헐리웃에 가서 그 아저씨를 보고 싶다는 생각을 얼마나 숱하게 했던가? 만나게 된다면 제일 먼저 무슨 이야기를 하나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한참 세월이 흘러서 그의 죽음 소식을 듣고서, 나는 이미 다 자란 어른인데도 불구하고 헝헝 울었었다.
또한 카페 데아뜨르에서 추송웅, 김금지 선생님의 '타이피스트'를 보고, 한국일보사 사옥 꼭대기에서 함현진 오빠가 나왔던 '고도를 기다리며'에 미쳐 버린 것도 다 그즈음이 아니었을까.
중학에 들어가서 토스토옙스키의 '백치'를 읽었을 땐 한 달을 잠을 못 자고 무이쉬킨의 모습에서 헤어나지를 못했다. 마지막 장면 생각을 하다가는 엉엉 소리내어 운 적도 있었다.
그즘에 또 사이먼 앤 가펑클의 'El Condor Pasa'를 듣고 하늘을 보며 마냥 슬프고 절망적인 생각에 잠기는 버릇이 생겼다. 가사 한 줄 한 줄 집어삼킬 듯 외고 또 외면서 몸을 갈기갈기 찢어 버리고 싶을 정도로 외로웠었다.
또한 드보르작의 'Violin Concerto op.64'에 빠졌던 것도 그 무렵이 아니였던가. 집이 떠나가라 음반을 돌리면 주무시던 아버지가 방문을 뚝뚝 두들기곤 하셨다. "잠 좀 자자."
우연히 들은 한대수의 '행복의 나라'로의 음반을 찾느라고 청계천의 레코드상을 뒤져대던 시간들도 있었다. 고교 때 크리스토퍼슨의 'Help me make it through the night'의 가사에 홀딱 빠져 밤이나 낮이나 흥얼거리며 기타를 긁어대 식구들을 괴롭히기도 했다. 그리고 그 이상으로 미쳤었던 테리 잭스의 'Seasons in the Sun'만을 부르며 제2한강교를 추운 겨울에 몇 차례나 오락가락했는지…?
그리고 그 때 또 나를 정신 빠진 년으로 만든 건, 케스트너의 '파비안' -그 런 남자를 사랑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 콕도의 '무서운 아이들', 필립의 '뷔뷔 드 몽빠르나스'였다. 작은 손바닥 책들이 나달나달해지도록 읽고 또 읽었다.
기타 등등 기타 등등 기타 등등.

그것들은 정말로 무서운 기세로 나를 두들겨댔고, 거기에서 헤어나오는 데에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던 것을 기억한다. 그런데 대학에 들어오면서 그렇게까지 무서운 충격으로 나를 때리는 것을 더 이상 만나지 못했다. 물론 그 때도 지금도 나를 감격시키거나 잠 못들도록 힘들게 한 것은 많았지만, 어떤 것도 어릴 때처럼 그렇게 오래도록 나는 아프게 하지는 못했던 것이다. 너무 아름다워서 아팠던 그 기억들…! 더는 그런 것들을 만날 수 없는 때가 묻어 버린 나 자신이 참 부끄럽고 싫었다. 그런데 두 해 전이었나, 조공례 선생님의 '진도 아리랑'을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날 밤에 전깃불도 켜지지 않은 어둠 속에서 들을 때, 갑자기 귀신의 소리를 듣는 것 같던 충격 속에서 참으로 오랜만에 가슴이 뜨거워질 수가 있었으니…나는 아직 살아 있었던 거다.

살아오면서 나는 틈만 나면 시간 여행을 한다. 나를 정말 아프게 두들겨대던 그것들과 만났던 그 시간을 찾아가기 위해서 방황을 한다. 아아, 무엇이 또 나를 두들길까. 흠씬 터져서 나를 널부러지게 할 그런 것을, 또 무언가를, 그렇게 나는 기다리고 있다.
Posted by 구름할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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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화풍 동양화

건넌방 2011. 6. 3. 00:11

서양화를 전공하고 있는 딸아이가 이번 학기에 본의 아니게 동양화 수업을 듣게 됐는데, 동양화와 서양화가 화풍이 달라서 내내 울화를 터뜨리며 선생님과 티격태격 해가며 그림을 그렸다. 마지막 자유작은, 비록 돌가루 동양화 물감을 아교에다 손가락으로 개서 동양화 붓으로 비단에 그렸지만 서양화 전공자답게 서양화풍이 살아 있는 강실군을 그렸다.
제일 좋아하는 장난감 '파'를 쥐고(?) 있는 강실군. 주걱턱 특징인 빛나는 입술이 압권이다. ^___^


Posted by 구름할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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