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었을까, 무엇으로 나는 지금까지 허이허이 달려왔던 것일까…

국민학교 3학년 때, 사촌언니가 갖고 있던 화집에서 고호의 그림을 처음 보았을 때 숨이 턱 막혀서, 막혀서…목구멍에 불이 붙는 줄 알았다.
같은 해였던가 아니면 다음 해였던가, 역시 그 언니의 다른 화집에서 샤갈의 전쟁을 보았을 때도 웬 무시무시한 영상이 내 머리에 한 방 먹인 듯했다.
그리고 그즈음에 들었던 베토벤의 곡들은, 나로 하여금 전생에 베토벤이었을 거라는, 지독한 집착에 빠지게 했었지. 얼른 자라서 독일로 날아가고 싶었었다. 베토벤의 음악을 베토벤의 고향에서 듣고 싶었다.
5학년 때 헤세의 데미안을 읽고 또 그렇게 나는 몇 날 며칠을 잠을 이루지 못 했다. 넘기고 또 넘기고…참으로 질기게도 그 책을 읽었었다. 나도 내 속에서 꼼지락거리는 무언가를 그렇게 글로 옮겨놓을 수 있을까, 처연하게 집착했었다.
그 해에 나는 마론 브란도가 나오는 영화를 줄줄이 봤다. 세상에나! 그런 눈빛을 한 사람이 있을 수 있다니…! 한 번이라도 헐리웃에 가서 그 아저씨를 보고 싶다는 생각을 얼마나 숱하게 했던가? 만나게 된다면 제일 먼저 무슨 이야기를 하나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한참 세월이 흘러서 그의 죽음 소식을 듣고서, 나는 이미 다 자란 어른인데도 불구하고 헝헝 울었었다.
또한 카페 데아뜨르에서 추송웅, 김금지 선생님의 '타이피스트'를 보고, 한국일보사 사옥 꼭대기에서 함현진 오빠가 나왔던 '고도를 기다리며'에 미쳐 버린 것도 다 그즈음이 아니었을까.
중학에 들어가서 토스토옙스키의 '백치'를 읽었을 땐 한 달을 잠을 못 자고 무이쉬킨의 모습에서 헤어나지를 못했다. 마지막 장면 생각을 하다가는 엉엉 소리내어 운 적도 있었다.
그즘에 또 사이먼 앤 가펑클의 'El Condor Pasa'를 듣고 하늘을 보며 마냥 슬프고 절망적인 생각에 잠기는 버릇이 생겼다. 가사 한 줄 한 줄 집어삼킬 듯 외고 또 외면서 몸을 갈기갈기 찢어 버리고 싶을 정도로 외로웠었다.
또한 드보르작의 'Violin Concerto op.64'에 빠졌던 것도 그 무렵이 아니였던가. 집이 떠나가라 음반을 돌리면 주무시던 아버지가 방문을 뚝뚝 두들기곤 하셨다. "잠 좀 자자."
우연히 들은 한대수의 '행복의 나라'로의 음반을 찾느라고 청계천의 레코드상을 뒤져대던 시간들도 있었다. 고교 때 크리스토퍼슨의 'Help me make it through the night'의 가사에 홀딱 빠져 밤이나 낮이나 흥얼거리며 기타를 긁어대 식구들을 괴롭히기도 했다. 그리고 그 이상으로 미쳤었던 테리 잭스의 'Seasons in the Sun'만을 부르며 제2한강교를 추운 겨울에 몇 차례나 오락가락했는지…?
그리고 그 때 또 나를 정신 빠진 년으로 만든 건, 케스트너의 '파비안' -그 런 남자를 사랑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 콕도의 '무서운 아이들', 필립의 '뷔뷔 드 몽빠르나스'였다. 작은 손바닥 책들이 나달나달해지도록 읽고 또 읽었다.
기타 등등 기타 등등 기타 등등.

그것들은 정말로 무서운 기세로 나를 두들겨댔고, 거기에서 헤어나오는 데에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던 것을 기억한다. 그런데 대학에 들어오면서 그렇게까지 무서운 충격으로 나를 때리는 것을 더 이상 만나지 못했다. 물론 그 때도 지금도 나를 감격시키거나 잠 못들도록 힘들게 한 것은 많았지만, 어떤 것도 어릴 때처럼 그렇게 오래도록 나는 아프게 하지는 못했던 것이다. 너무 아름다워서 아팠던 그 기억들…! 더는 그런 것들을 만날 수 없는 때가 묻어 버린 나 자신이 참 부끄럽고 싫었다. 그런데 두 해 전이었나, 조공례 선생님의 '진도 아리랑'을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날 밤에 전깃불도 켜지지 않은 어둠 속에서 들을 때, 갑자기 귀신의 소리를 듣는 것 같던 충격 속에서 참으로 오랜만에 가슴이 뜨거워질 수가 있었으니…나는 아직 살아 있었던 거다.

살아오면서 나는 틈만 나면 시간 여행을 한다. 나를 정말 아프게 두들겨대던 그것들과 만났던 그 시간을 찾아가기 위해서 방황을 한다. 아아, 무엇이 또 나를 두들길까. 흠씬 터져서 나를 널부러지게 할 그런 것을, 또 무언가를, 그렇게 나는 기다리고 있다.
Posted by 구름할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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