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에 해당되는 글 208건

  1. 2010.05.01 과잉의 폐해 by 구름할망
  2. 2010.04.27 이런 추천: 서영남 『민들레 국수집의 홀씨 하나 / 정혜신 by 구름할망
  3. 2010.03.23 황사 by 구름할망
  4. 2010.03.11 편안하게 지옥에 드소서 by 구름할망
  5. 2010.01.20 왜 진작에 이 생각을 못 했을까 by 구름할망 2
  6. 2010.01.07 친환경 제설제 by 구름할망
  7. 2010.01.04 지겹다 by 구름할망 1
  8. 2009.12.04 요즘 늙은이들 버릇없어 큰일이다 / 오잉 by 구름할망
  9. 2009.12.02 팔려라 팔려라 by 구름할망 2
  10. 2009.11.28 쟤네들을 어이 할꼬 by 구름할망

과잉의 폐해

마당 2010. 5. 1. 09:34
"적게 먹어서 걸린 병은 다시 먹으면 낫지만 많이 먹어서 걸린 병은 화타(華陀)나 편작(扁鵲)이 와도 고치지 못한다''는 의학격언이 있다. 예컨대 비타민 A 부족으로 인한 야맹증엔 비타민 A를 보충해주면 충분하다는 뜻이다. 그러나 과잉 영양으로 비롯된 질환은 대부분 난치병이다. 동맥경화와 고혈압, 당뇨, 심장병 등 대부분의 성인병도 거슬러 올라가면 영양소의 과다섭취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 홍혜걸의《의사들이 절대로 말해주지 않는 건강 이야기》중에서 -
Posted by 구름할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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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blog.naver.com/mindprism/80106332236


(24쪽)민들레 국수집엔 국수가 없다. 며칠씩 거른 분들께 국수는 요기가 되지 않아 주메뉴를 밥으로 바꾸었다. 손님들이 “이제 밥은 지겨우니 국수 좀 달라”고 할 때까지 계속 밥을 대접할 생각이다. <br/>
민들레 국수집에서는 매일같이 밥과 국, 다섯 종류 이상의 반찬을 마련해 놓고 손님들을 기다린다. 손님들은 뷔페식으로 원하는 만큼 양껏 먹을 수 있고,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 사이에는 하루에 두세 번 와도 대환영이다. 돌아서면 배가 고프다면서 하루에 다섯 번 먹은 손님도 있었다. 

(17쪽)
사람들은 민들레 국수집이 무료로 밥을 먹을 수 있는 식당이라고 말하면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한마디씩 한다.
“에이, 거짓말. 세상에 그런 곳이 어디 있어!”
2003년 3월 초에 국수집 준비를 시작하면서 4월 1일 만우절을 문 여는 날로 정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 거짓말 같은 일이 있다는 것을, 밥보다 더 중요한 것이 ‘사람대접’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19쪽)
민들레 국수집을 시작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이 ‘사람대접’이라 우리 손님들이 눈칫밥을 먹지 않게 무료급식이라는 표시를 내지 않도록 했다. 지금은 필요 없어서 취소했지만(돈을 주고받지 않기 때문에 세무서에 보고할 것이 없어서) 사업자등록도 하고 보통 음식점처럼 일반요식업 등록도 했다.

(25쪽)
민들레의 집은 모든 것이 자유롭다. 떠나고 싶으면 떠나고, 머물고 싶으면 머물고, 떠났다가 다시 오고 싶으면 그렇게 할 수 있다. 물론 자립해서 떠나면 제일 좋은 일이다. 일하라고 잔소리하지도 않고 필요하면 수도원 수준의 용돈도 드린다. 자신이 원하면 자취할 수도 있고, 민들레 국수집에 와서 식사할 수도 있다. 민들레의 집은 ‘홀로서기’ 할 때까지 언제까지나 기다려준다.
국수집 손님들에게 방을 얻어 자기만의 공간에서 따로 살게 해주고, 철이 들어 스스로 잘 살아보겠다고 떠날 때까지 기다려주는 이유는 간단하다. 사람은 아주 서서히 변화하고, 사랑은 오래 참고 오래 기다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264쪽)
민들레 국수집에서는 대략 보름마다 40~50포기의 김치를 담그는데, 가게 안이 너무 비좁아서 대체로 길거리에서 김칫거리를 다듬고 절이고 버무린다. 그러면 지나가시는 동네 분들이 하나둘 거들어주시는데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동네잔치가 시작된다. 보살 할머니는 커피를 한 주전자 타 오셔서 마시면서 하라고 한 잔씩 돌리신 후 거들어 주시고, 구멍가게 지훈이 할머니는 파도 다듬고 마늘도 다듬어 주신다. 지나가던 새마을 부녀회장님도 김치담그는 걸 보시면 얼른 행주치마를 챙겨 나오셔서 거드신다.

-서영남, 『민들레 국수집의 홀씨 하나』,
배고픈 사람에게 밥을 대접하는 서영남 전직 수사 이야기

★근자에 제가 가장 감동받고, 가장 존경하고, 가장 많이 배우는 민들레국수집 운영자 서영남 선생의 이야기입니다.
‘정부의 지원이나 부자들의 생색내기 자선없이’ 풀뿌리 이웃들의 자발적 나눔과 정성만으로 노숙인들을 위한 무료식당을 8년째 운영하고 있는 것도 놀랍지만 그보다 더 제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사람대접’을 실천하려는 민들레국수집의 초지일관한 태도들입니다.
무료급식이라는 표시가 나지 않도록 필요도 없는 사업자등록을 하고, 줄서기에 관계없이 제일 많이 굶어서 제일 배고픈 사람에게 제일 먼저 밥을 먹게 하고, 공짜 밥을 먹으러 오는 이들을 손님이라 부릅니다.
사람은 아주 천천히, 스스로 변화하는 존재라는 굳건한 믿음으로 도움받는 이들에게 잔소리하거나 계몽하지 않고 묵묵히 오래 기다려 주는 서영남 선생의 끈질긴 온유함엔 절로 고개가 숙여집니다.
붕어빵에 붕어가 없고 칼국수에 칼이 없다는 우스개처럼 국수집에 국수가 없는 역설이 처음엔 좀 의아하지만, 이 또한 늘 배가 고픈 손님들을 배려하는 주인장의 마음씀씀이란 걸 알고 나면 맛난 음식을 포식했을 때처럼 마음이 얼마나 그득해 지는지 모릅니다.
나눔과 배려의 손길을 나누는 자리가 동네잔치가 된다는 묘사에 이르면 혹시 내가 더 잘 살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이러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의문이 생깁니다.
남편의 완전한 팬임을 자처하는 서영남 선생의 부인은 자신은 남편을 만나 ‘사람이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그녀 또한 제가 보기엔 베풀고 보듬기가 거의 대가의 수준인데요.
부인에게 이런 완전한 인정을 받을 수 있는 사람, 흔치 않지요.
그런 면에서 보면 서영남 선생은 복이 많은 사람입니다.
서영남 선생의 만우절 같은 이야기를 듣다 보면 그를 만나 ‘사람이 되었다’는 부인의 고백이 무슨 뜻인지 실감하실 수 있을 거예요, 아주 확실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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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사

마당 2010. 3. 23. 10:27
뒷산 약수터 가고 싶은데...망할 놈의 황사 때문에 당분간 꼼짝 안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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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기꺼이 지옥으로 가셨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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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국물을 쉽게 따르기 위해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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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환경 제설제

마당 2010. 1. 7. 08:20
가장 친환경적으로 제설하는 방법은 역시 눈을 퍼서 다른 데다가 갖다버리는 것이겠지요. 가정에서 할 수 있는 친환경적인 제설은 뭐니뭐니해도 눈사람이 아닐까요? 눈사람을 만들어서 화단에 놓아두면 눈을 거리에서 물리적으로 제거하게 되고 눈사람의 형태로 축적된 물은 기온이 풀리면 화단에 스며들어 목마른 식물들의 갈증을 풀어주게 되니까 말입니다.

출처 : http://mogibul.egloos.com/4313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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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겹다

마당 2010. 1. 4. 13:30
오늘은 특히 더 웬수 같은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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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onesuck.egloos.com/2488293


어떤 사람들은 사람이 북적이는 곳을 좋아하지만, 나는 사람이 많은 곳을 싫어한다. 각종 몰들도 별로 안 좋아하고, 주말의 놀이동산도 싫고, 세일기간 백화점도 싫다. 연말연시의 명동도 싫고, 웨이터 몬스터들이 명함을 날릴 무렵의 강남역도 혐오한다. 특히 제일 싫은 건 지하철. 여기는 정말 각박하다. 그래도 책 읽어도 어지럽지 않은 대중교통수단은 지하철 뿐이라 울며 겨자먹기로 이용할 수 밖에 없다. 애용한다고 해야 하나. (대중교통에서 독서 시 구토유발정도 = 택시(난폭한 운전, 이상한 냄새)>버스-넘사벽>>>>지하철)

사람이 많은 곳을 싫어하는 이유? 뭐 내가 은둔형 외톨이라서 그런 게 아니라, 오히려 지극히 상식적인 인간이기에 그렇다. 사람이 많은 곳엔 보통으로 간주되어지는 상식을 나와 공유하는 사람도 있지만, 꼭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끼어 있다. 그리고 꼭 그들의 보기싫은 행동을 봐야  한다. 심지어 어쩔 때는 당해야 한다. 예를 들어 보자. 모두 직접 겪은 일이다. 모두가 한 번은 겪어본 일일 꺼고.


1.
 
출근시간의 지하철이다. 우리집의 역에서 타면, 통상 앉을 자리가 없기는 하지만 만원까지는 아니다. 그래서, 보통 손잡이를 잡고 서서 편안하게 책을 읽는다.퍽! 누군가가 몸통박치기를 해온다. 책을 놓쳤다. 쳐다보니 50대 후반 정도의 아저씨다. 볼링공처럼 몇몇 서있는 사람들을 어깨로 툭툭 밀쳐가며 전진하신다. 10여명을 휘청거리게 한 후, 다음 칸으로 이동하신다. 환승역에서의 빠른 이동을 준비하는 능숙한 생활인들. 이 아저씨들의 난폭한 움직임에 의한 불쾌한 충돌은 하루에도 몇 번씩 벌어진다. 뭐, 서두르는 게 나쁘다는 건 아니다. 그래서 1분이나 빨리 갈지 의문이긴 하지만. 음, 아마도, 이럴 경우의 행동지침은 '실례합니다'를 살짝 외치며 천천히 움직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니 사실, 그냥 조심스럽기만 해도 충분히 지나갈 수 있다. 서 있는 우리들의 존재 자체가 짜증이 난 것이라고 밖에 생각이 안 든다.

아아..사실 쩍벌남 아저씨들과, 신문 쫙쫙 아저씨들이 싫어 웬만하면 출근시간엔 자리가 있어도 서서 다니는데, 이제 럭비좀비들한테 시달리느라 서 있는 것도 쉽지 않다. 차를 가지고 다니자니 책을 못 읽고 유지비도 많이 든다. 방법은 돈 많이 벌어서 흔들림 거의 없는 마이바흐에 베터랑 기사를 두는 것인가?  하아, 제길.
이게 다 늙은 아저씨들 때문이다. 


2.

우리는 동방예의지국이다, 젊은이가 늙은이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훈훈한 풍경을 자주 볼 수 있는 나라이다, 라고 교육받아 왔다. 당연히 자신의 몸에 큰 이상이 없고, 서 있기 힘드신 나이 드신 분이 타신다면 자리를 양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도덕이 문제가 아니라, 나는 서있는 게 그렇게 힘들지 않지만, 그 분은 정말 힘드실 테니까. 이건 그냥 배려다. 그런데, 승차한 노인을 못 본 건 죄가 아니다.

어느 날 이어폰을 꼽고 앉아서 졸고있는 젊은 직장인 앞에 자리를 잡고 섰다. 마침 그 의자는 여자와 중년 이상의 중늙은이로 꽉차 있었고, 60대 정도의 어르신이 다음 역에서 승차하셨다. 경로석은 더 노인으로 꽉 차 있었고, 아무도 양보할 만한 사람들이 없었다. 아줌마들이 양보할 리도 없고, 10살 차이도 안 나 보이는 형을 어르신 취급해 주는 중년들도 없었다.

그날 안 건데, 노인도 쌍욕 하더라. 졸고 있는 젊은이를 향해, 씨이벌. 씨이벌...에잉...씨이벌.. 하시며 노려보신다. 분명히 일부러 자는 척이라고 혼자 판단하신 듯. 내가 서서 보고 있었지만, 아까부터 자고 있었는데;;; 잠시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데, 헉!!! 머리통을 냅다 갈기신다. 화다닥 깨어난 젊은이가 놀라서 이어폰도 못 빼고 있는데, 어르신의 열정적이고 우렁차며 욕설이 담뿍 베인 설교가 쏟아진다. 하여튼 요즘 젊은 개새끼들은 이런 개새끼들도 없다는 논조이시다.  흐음. 그 정도의 열정과 체력이시면  서서 가셔도 될 듯.

양보라는 건, 예의라기보다는 개인의 '선의'에 가깝다. 착한 마음에 의한 자발적인 '권리'의 양도이다. 사실 그걸 원래 내가 지닐 권리라고 생각하는 어른이 생기는 순간, 선의는 하기 싫은 의무로 변질된다. 그로써 예의는 무너진다.


3.

공공교통수단의 노약자석은, 늙고 약한 사람들을 위한 자리이다. 웬만하면 그들을 위해 비워두는 것이 예의이다. 가끔 그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 젊은 사람이 앉아 있으면, 고개를 갸웃 하다가도, 사연이 있겠거니 생각한다. '노'야 비주얼로 충분히 확인할 수 있지만, '약'은 보이는것 만으로 판단하기엔 어려움이 많다. 그 중에 가장 많은 경우는 임산부인데, 이게 참 쉽지 않다. 임산부는 오히려 어느 정도 배가 나온 경우보다 3개월 미만일 때가 더 위험하고 육체적으로 힘들다고 알고 있다. 홀몬 분비의 교란으로 길 가다가도 어지럽고 체력도 약해지고 기분도 최악일 때가 많다. 더더욱, 옛부터 어른들이 강조해 왔듯, 이 시기엔 착상이 안정적이지 않아 몸가짐을 극도로 조심해야 한다. 찬바람도 쐬지 말라고 했다.

아마도 나보다 더 긴 인생을 겪어온 어른들은 이런 사실을 더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나이 먹으면 지혜라는 게 있으니까. 가끔 보는 풍경 중에, 노약자석에 앉은 '예의 없다고 억지되어지는' 임산부와 '예의는 커녕 개념도 없는' 노인의 실랑이가 있다. 왜 젊은 아가씨가 노약자석에 앉아 있냐고. 저, 제가 임산부라서요. 무슨! 배도 안 나왔구먼. 젊은 것이 싹수없이 어른 앞에서 거짓말이야! 아...제가 지금 8주쯤 됐는데 정말 힘들어서요. 아니, 젊은 게 뭐가 힘들어? 아니, 낼모레 하는 나보다 힘들어?  뻔뻔스럽게 염치도 없이. 여기는 나이 먹은 사람들 자리야. 그리고, 그렇게 힘들면 밖에 싸돌아다니지를 마. 하여튼, 요즘엔 여자들이 설쳐서 큰일이야.

저기, 할아버지. 반사에요. 반사. 그리고 장수하실 것 같은데요, 뭘.

이 분들 덕분에 임산부 뺏지와 스티커까지 생겼지만, 변함없다.
결국 옆의 일반석에 앉아 있던 아줌마가 데려와 앉혔다. 제길.


4.

자, 강도를 조금 높여보자. 이건, 내 가족이 당한 일이다. 임신 초기의 임산부야 식별이 어려우니 오해도 있을 수 있다. 사람이 타인을 믿지 못할 수도 있다. 근데, 만삭의 임산부는 누가 봐도 힘들어 보이는 명백한 임산부다. 그녀가 만삭이었을 때, 남편이 누구인지 졸라 무능해서 그녀는 여전히 출근을 하고 있었다. 돈 벌어야지. 만삭은 말 그대로 거동이 힘들다. 펭귄처럼 뒤뚱뒤뚱 느릴 수 밖에 없다. 그래도 걸음이 느린 게 미안해 전역에서 미리 자리에서 일어나 출입구 앞에서 서 있었다. 회사가 있는 역에 도착해 문이 열린다. 힘겹게 뒤뚱뒤뚱 걸음을 옮긴다. 남편이라도 옆에 있음 좋으련만.

그 순간 뒤어서 짧은 욕설과 함께 누가 강하게 밀친다. 안 그래도 몸의 중심이 앞쪽에 온통 쏠려 있는데, 벌러덩 앞으로 넘어지고 만다. 뒤이어 또 욕설이 들려온다. 아니, 씨발 왜 바쁜 시간에 문 앞에서 걸그적거리고 그래? 50대 정도의 아저씨다. 임산부는 넘어져서 정신 못 차리고 울고 있었고, 같이 내리던 생면부지 청년이 발끈한다. 아저씨, 임산부잖아요. 아저씨가 넘어뜨려서 지금 큰일 날 수도 있는데, 뭐라구요, 도리어 화를 내세요? 도대체 제 정신입니까!

마누란가보다. 옆에 있던 아줌마가 나선다. 와, 이 새파란 젊은 놈이 어른한테 대드는 거 보게. 너는 애미 애비도 없니? 주변 사람들이 끼어들면서 난장판이 된다. 당연히 두 중늙은이 부부가 몰리게 된다. 연락처 적어놓고 가라는 사람들도 나온다. 이 임산부 잘못 되면 당신들이 책임져야 한다고. 그랬더니 그들의 반응은?

누구는 애 안 가져 봤냐. 그런 걸로 어떻게 되지 않는다. 그리고 아무리 임신했어도 남한테 피해 주지는 말아야지, 왜 공공장소에서 그러고 다니냐, 생각 좀 하고 살아라. 그리고, 아줌마! (어, 아저씨가 50대인데, 자기보다 20살 넘게 어린 여자에게 그렇게 불러도 안 챙피함?) 나, 이 시간에 매일 이거 타고 다니니까, 잘못 되면 언제든 말하든 고소하든 하라고. 엄살은. 그런걸로 잘못 안 돼! 하며 포부도 당당하게 사라졌다...고 한다. 어이를 상실한 사람들은 일시정지 상태였고.

긴 말 않겠다. 지금이라도 눈에 띄면 업어치기로 찬 바닥에 대차게 꽂아버리고 싶다. 그리고 외치고 싶다. "반사!" 라고. 늙은 게 왜 걸리적거리냐고. 아무리 늙었어도 남한테 피해 주지는 말아야지, 왜 공공장소에서 걸리적거리냐고.


이런 저런 보기 싫은 꼴들을 겪으며 느낀 아이러니가 바로 제목이다. 나는 우리 사회의 딱 중간 나이다. 젊은이도 늙은이도 아니니까. 물론 젊은이에 좀 더 가깝기는 해도, 요즘 아이들 편을 드는 건 인지상정상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균적으로 예의가 정말 없는 쪽은 '늙은이'쪽이다. 우리가 동방예의지국이라 어거지로 주장하고는 있지만, 온고지신의 수장일 그들의 예의 상실은 그야말로 어이상실이다.

왜일까. 곰곰히 생각해 보니, 알 것도 같았다.
아래의 마지막 이야기 속에 그 이유가 담겨져 있다.


주인공은 60대쯤의 두 분의 할아버님이다. 출근 시간. 장소는 지하철. 요즘 들어 자주 뵙는 지하철에서 무가지를 모으시는, 어려운 생활을 하는 분들이다. 솔직히 이 분들이 짐칸의 신문을 수거하실 때마다 짜증이 나기는 한다. 급하게 하시느라 마구 부딪혀 오시니까. 하지만 잘 펴지지도 않는 허리에 까치발로 땀을 뻘뻘 흘리며 높은 곳의 신문을 급하게 내리는 모습은, 뭐랄까, 숙연해진다.

서울에서 지하철로 출근하시는 분들은 다 알겠지만, 언젠가부터 이 참을 수 밖에 없는 숙연함에 과열경쟁이라는 요소가 끼어들었다. 처음에는 몇 명의 노인들이 그나마 손쉽게 폐지를 구할 수 있었던 지하철이라는 금맥이, 여러 노인들 사이에 용돈벌이로 (혹은, 생계수단으로) 소문이 난 것인지도 모른다. 한 노인이 땀을 뻘뻘 흘리며 평소의 두 배의 속도로 신문지를 거둬들이며 지나간다. 뭐가 그리 급하신지 평소보다 더 난폭하시다. 지나가는 곳마다 밀쳐진 승객들의 짜증섞인 '아우~'소리가 파도를 친다. 페이드 아웃. 다음 칸으로 넘어간다.

바로 뒤이어 새로운 노인분 페이드인. 헉. 선반 위엔 아무 것도 없다. 방금 지나온 곳도 그랬는데. 벌써 누군가 지나갔구나. 잠시 서서 생각을 하시는 눈치다. 마침 전철이 역에 정차를 한다. 출입구로 냅다 나가시더니, 냅다 뛰어가신다. 노구를 이끌고 전력질주를 하시더니 다음다음 칸의 문안으로 가까스로 뛰어들어가신다. 와! 이것이 바로 자본주의의 꽃! 경쟁의 창발성이구나! 헛헛한 감동 한 모금.

다음 날. 맙소사, 오늘은 노인 두 분이 거의 동시에 우리 칸으로 넘어왔다. 거의 땀으로 목욕하신 두 노인 분이 한 칸의 선반 위 신문을을 경쟁적으로 거둬들이신다. 아마도 여지껏 실랑이하며 정신없이 달려오신 듯. 좁은 출근길 지하철에서 중간에 서로 몸이 부딪힌다. 에이, 씨발새끼. 욕설과 함께 두 노인이 싸운다. 입이 벌어진 시민들은 부딪히면서도 아우 소리 하나 못 낸다. 이 풍경이 상징하는 바가 받아들이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기독교가 그렇듯, 우리의 자본주의도 본의 아니게 전도된 것이다. 민주주의에 대한 시행 착오 끝에 저절로 태어난 자본주의가 아니라, 전도된 자본주의인 탓에 가장 천박하고, 사실 가장 솔직한 상태에서 학습되어져 버렸다. 무식한 앞잡이와 무식한 군사정권의 비민주적 정치의 영도 아래 자리잡은 자본주의는, 자유시장이 민주주의와 동일어인 상태에서 굳어져 버렸다. 좀 더 고귀한 개념인 '자유'는 그냥 시장에서의 '자유'로 학습되었다. 나를 제외한 모든 타인은, 사람이 아니라, 재화인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시민이 아니라 소비자, 혹은 생산자, 자영업자일 뿐이다.

실제로 우리의 부모로부터 우리는 그런 교육을 받으며 살아왔다. 재화들을 잘 이용해서 짓밟고 올라가는 교육. 법만 어기지 않으면 무슨 짓이라도 해서, 법망을 교묘히 피해서라도 부자가 돼야 한다는 충혈된 부모의 눈들을 보고 자라왔다. 이건 빈부를 떠나 마찬가지다.


예의라는 건 준법정신 같은 게 아니다. 예의는 존중이다. 예의는 전혀 모르는 타인도 중요한 존재고, 그를 나와 같은 인간으로 존중하겠다는 마음가짐이나 자세 같은 거라고 생각한다. 당연하겠지만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못 하는 사람들에겐 인간 존중을 바탕에 둔 예의를 가지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런 사회에서 살아왔고, 여전히 살아가고 있는 그들은 그렇게 '버릇없는 놈들'이 된 것이다. 바탕없는 천한 자본주의를 구축한 대한민국이 그들을 그렇게 만든 것이다. 외국에 나가면 공공장소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실례합니다'라는 말을, 대한민국에서는 좀처럼 들을 수 없다.

근본없는 전도 자본주의의 천박함이 인간을 예의없이 만든다는 것, 타인을 무가치한 존재로 생각하게 만든다는 것의 명백한 증거는 바로, 대륙이다. 우리는 매일 대륙스케일이라 조롱하지만, 대륙이나 대한민국이나 세계에서 가장 비슷한 나라다. 자본주의적으로 말이다.


발톱녀의 사례를 봐라. 남 일 같지 않지? 깎는 사람이나, 아무 상관없어 하는 사람이나. 타인을 사람으로 보지 않는 지금의 중국인들. 그들과 우리가 뭐가 다른지 난 당췌 모르겠다.


덧.1.
제목에 대한 핑계. 기원전 아테네 유적에서부터 발견되어 지금까지 널리 사용되고 있는 '요즘 젊은이들 버릇없어 걱정이다'라는 오래 되고 상투적인 말에 대한 패러디일 뿐 나이 먹음에 대한 조롱으로써 '늙은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은 아님. 나 그렇게 막 나가는 넘 아님.

덧.2.
애기는 잘 나와서, 잘 자라고 있다. 좀 더 크면 유도를 가르칠 생각이다. 우리 집안은 원한을 잊지 않는다.

덧.3.
잠깐, 들어와 정리글 보탭니다.
다시 한 번 명백히 말씀드리지만, 공공장소에서 보여지는 예의없음은 50대 이상의 세대에서 좀 더 도드라집니다. 반면 요즘 아이들은 모르는 타인과 접촉 및 관계하는 것조차 싫어하니, 공공장소에서의 해악은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죠. 지들끼리 구석자리에 쪼그려 있는것 말고는 별로..... 지하철에서 고함지르면서 통화하는 시끄러운 사람들은 대부분 어른들이지, 아이들은 문자를 주로 보내더군요. 매일 지하철을 타지만, 아이들 때문에 눈살을 찌푸린 기억은 별로 남는 것이 없네요.
정리하자면, 제목은 이 글에 언급된 4번을 제외한 모든 분들만큼 무례하기는 하지만 제 의도를 정확히 반영하려 한 패러디입니다. 지금의 50대 이상의 나이 드신 분들에게, "요즘 젊은이들 버릇없어 걱정이다" 말할 자격이 없다는 거죠. 아이들은 어른을 보면서 자랍니다. 그들의 인간에 대한 비존중은 대를 이어 전해 내려가는 것 아닐까요. 그래서, 어른들의 버릇없음이 "큰일"이라는 겁니다. 솔직히 보고 배운 거에 비하면 요즘 아이들이 착한 겁니다.

형님들, 누님들, 삼촌들, 어르신들. 할아버님들.
먼저 저의 무례를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건방지고 재수없는 글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부탁드립니다.
시대의 상처는 잊고, 이제 좋은 어른이 되어 주십시오.

이런 자극적이고 선정적이고 버릇없는 제목의 글이 다시는 공감받지 않게 말입니다.

역시나, 개인의 의견이고 주장이라, 제목은 절대 바꾸지 않겠습니다.
좋은 어른들은 제목의 의도를 용서해 주실 꺼라 생각합니다.

Posted by 구름할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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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려라 팔려라

마당 2009. 12. 2. 09:23

- 신인작가가 오죽 많은데, 이렇게 늙은 신인작가 책이 설마 팔리기야 하겠니. 초판도 나가지 않을 거라고 출판사에서 그러더라. 그냥 소장용이겠거니 해야지 뭐. 그래도 장편은 좀 다르대. 내년에는 아마 장편 낼 거야.

허리 곧추 세우고 앉아 빙그레 웃기만 하는 나를 안쓰럽게 보던 A가 B를 돌아보며 말을 이었다.

- 사실 글은 쟤가 써야 잘 쓸 텐데. 쟤는 거의 천재수준이거든. 고등학교 때부터 소설을 썼다구.

흐흐, 과찬의 말씀. 무슨 천재가 이리 찌그러져 있댜. 넌 항상 나를 너무 높이 평가해줘서 나를 좌불안석이게 해. 네 발전, 정말 놀라워. 처음 소설을 시작하겠노라고 했을 때 내민 작품은 완전 여고생 소설이었거든. 솔직히 말해서 내 고등학교 시절은 그 정도로 한심하진 않았으니까. 그런데 미친 듯이 공부하고 고민하고 애를 쓰더니, 신춘문예 2관왕이 되었을 때도 나는 축하는 했지만 감탄은 하지 않았지. 많이 나아졌군, 이 정도면 나도 신춘문예 도전해도 되겠어, 생각했던 게 사실이야. 하지만 그 후에도 얼마나 고통스럽게 너를 깎는 노력을 했는지 잘 알지. 이 세상에 노력보다 더 근사한 지불은 없는 법이란 걸 여실히 보여준 셈이야. 완벽이라는 건 있을 수도 없는 것, 읽는 이의 눈에 완전할 리야 없겠지만, 그래도 이제는 '소설가'스러워. 너무 네가 자랑스럽다.

나는 존재를 만들어낸다는 데에 언제부터 지쳐 버렸지. 다른 시대, 생뚱한 사건, 여기 나와 전혀 다른 시각과 사고를 펼쳐보인다 해도, 어쩌면 살짝 성공한다 해도 결국 내 얘기일 수밖에 없는 한계가 역겹다 해야 할까. 아니라고 부정하지 못 하는 나와는 달리 그것으로 해방감을 느낄 수도 있는 많은 카타르시스에 내가 해당하지 못 한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만든 이야기는 접기로 했지. 네가 아무리 천재라고 꼬셔도 더는 그런 거 못 써. 서사를 완벽하게 하기 위한 탐색과 연구도 귀찮고, 그렇다고 사고의 흐름만 줄창 따라가서 읽는 사람이 지겨워지게 만드는 것도 미안해서 못 하겠고...내 능력도 내 노력도 도달하지 못 할 곳이야. 그건 다른 이의 몫으로 남겨둬야 하는 거지. 나는 그냥 지금처럼 직설적으로 나를 까발기고만 싶거든, 그럴 줄밖에 모르거든.

부디 조금이라도 팔렸으면. 그래서 네가 기쁘고, 우리도 기쁘고, 가엾은 네 주머니도 약간 도도록해졌으면. 다음 네 장편을 기다린다. 내 사랑, 내 자랑.

Posted by 구름할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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쟤네들을 어이 할꼬

마당 2009. 11. 28. 11:16

괜스레 식당은 차려갖고. 식당 있다고 소문이 났는지 손님들이 늘어 아침 저녁으로 바쁘고 푸짐해진 건 좋은데. 너무 잘 먹여 그런가 통통하니 살이 오르다 못 해 돼지냥이 되어갖고 이 겨울 추위는 끄떡없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내가 마냥 밥집을 열어둘 수 없어서리...쟤네들을 어이 할꼬. 더구나 엄마 젖 떨어지자마자 엄마 따라 이 식당에서 밥 먹어온 조 꼬마는 혼자서 쓰레기도 뒤질 줄 모를 텐데...에고, 내가 죄를 짓나 보다.
Posted by 구름할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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