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blog.naver.com/mindprism/80106332236


(24쪽)민들레 국수집엔 국수가 없다. 며칠씩 거른 분들께 국수는 요기가 되지 않아 주메뉴를 밥으로 바꾸었다. 손님들이 “이제 밥은 지겨우니 국수 좀 달라”고 할 때까지 계속 밥을 대접할 생각이다. <br/>
민들레 국수집에서는 매일같이 밥과 국, 다섯 종류 이상의 반찬을 마련해 놓고 손님들을 기다린다. 손님들은 뷔페식으로 원하는 만큼 양껏 먹을 수 있고,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 사이에는 하루에 두세 번 와도 대환영이다. 돌아서면 배가 고프다면서 하루에 다섯 번 먹은 손님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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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민들레 국수집이 무료로 밥을 먹을 수 있는 식당이라고 말하면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한마디씩 한다.
“에이, 거짓말. 세상에 그런 곳이 어디 있어!”
2003년 3월 초에 국수집 준비를 시작하면서 4월 1일 만우절을 문 여는 날로 정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 거짓말 같은 일이 있다는 것을, 밥보다 더 중요한 것이 ‘사람대접’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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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 국수집을 시작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이 ‘사람대접’이라 우리 손님들이 눈칫밥을 먹지 않게 무료급식이라는 표시를 내지 않도록 했다. 지금은 필요 없어서 취소했지만(돈을 주고받지 않기 때문에 세무서에 보고할 것이 없어서) 사업자등록도 하고 보통 음식점처럼 일반요식업 등록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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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의 집은 모든 것이 자유롭다. 떠나고 싶으면 떠나고, 머물고 싶으면 머물고, 떠났다가 다시 오고 싶으면 그렇게 할 수 있다. 물론 자립해서 떠나면 제일 좋은 일이다. 일하라고 잔소리하지도 않고 필요하면 수도원 수준의 용돈도 드린다. 자신이 원하면 자취할 수도 있고, 민들레 국수집에 와서 식사할 수도 있다. 민들레의 집은 ‘홀로서기’ 할 때까지 언제까지나 기다려준다.
국수집 손님들에게 방을 얻어 자기만의 공간에서 따로 살게 해주고, 철이 들어 스스로 잘 살아보겠다고 떠날 때까지 기다려주는 이유는 간단하다. 사람은 아주 서서히 변화하고, 사랑은 오래 참고 오래 기다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264쪽)
민들레 국수집에서는 대략 보름마다 40~50포기의 김치를 담그는데, 가게 안이 너무 비좁아서 대체로 길거리에서 김칫거리를 다듬고 절이고 버무린다. 그러면 지나가시는 동네 분들이 하나둘 거들어주시는데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동네잔치가 시작된다. 보살 할머니는 커피를 한 주전자 타 오셔서 마시면서 하라고 한 잔씩 돌리신 후 거들어 주시고, 구멍가게 지훈이 할머니는 파도 다듬고 마늘도 다듬어 주신다. 지나가던 새마을 부녀회장님도 김치담그는 걸 보시면 얼른 행주치마를 챙겨 나오셔서 거드신다.

-서영남, 『민들레 국수집의 홀씨 하나』,
배고픈 사람에게 밥을 대접하는 서영남 전직 수사 이야기

★근자에 제가 가장 감동받고, 가장 존경하고, 가장 많이 배우는 민들레국수집 운영자 서영남 선생의 이야기입니다.
‘정부의 지원이나 부자들의 생색내기 자선없이’ 풀뿌리 이웃들의 자발적 나눔과 정성만으로 노숙인들을 위한 무료식당을 8년째 운영하고 있는 것도 놀랍지만 그보다 더 제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사람대접’을 실천하려는 민들레국수집의 초지일관한 태도들입니다.
무료급식이라는 표시가 나지 않도록 필요도 없는 사업자등록을 하고, 줄서기에 관계없이 제일 많이 굶어서 제일 배고픈 사람에게 제일 먼저 밥을 먹게 하고, 공짜 밥을 먹으러 오는 이들을 손님이라 부릅니다.
사람은 아주 천천히, 스스로 변화하는 존재라는 굳건한 믿음으로 도움받는 이들에게 잔소리하거나 계몽하지 않고 묵묵히 오래 기다려 주는 서영남 선생의 끈질긴 온유함엔 절로 고개가 숙여집니다.
붕어빵에 붕어가 없고 칼국수에 칼이 없다는 우스개처럼 국수집에 국수가 없는 역설이 처음엔 좀 의아하지만, 이 또한 늘 배가 고픈 손님들을 배려하는 주인장의 마음씀씀이란 걸 알고 나면 맛난 음식을 포식했을 때처럼 마음이 얼마나 그득해 지는지 모릅니다.
나눔과 배려의 손길을 나누는 자리가 동네잔치가 된다는 묘사에 이르면 혹시 내가 더 잘 살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이러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의문이 생깁니다.
남편의 완전한 팬임을 자처하는 서영남 선생의 부인은 자신은 남편을 만나 ‘사람이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그녀 또한 제가 보기엔 베풀고 보듬기가 거의 대가의 수준인데요.
부인에게 이런 완전한 인정을 받을 수 있는 사람, 흔치 않지요.
그런 면에서 보면 서영남 선생은 복이 많은 사람입니다.
서영남 선생의 만우절 같은 이야기를 듣다 보면 그를 만나 ‘사람이 되었다’는 부인의 고백이 무슨 뜻인지 실감하실 수 있을 거예요, 아주 확실하게.^*^

Posted by 구름할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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